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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월/11Off

나와 인형: 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기대

COEX에서 열리는 2010 서울인형전시회에 갔다왔다. 작년 행사와 마찬가지로 동아리 후배 한명과 동행했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인형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되었고.

내가 처음 인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중학교때 이후로는 속해있는 문화권 덕분에 각종 인형(특히 '구관'이라 불리는 것들 - 구체 관절 인형)을 다루는 문화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인형을 다룰 만한 위인은 못 되었다. 지배적인 이유는 귀찮아서1일 것이다. 그러다 서점을 뒤지는 도중 이제이북스의 '살아 있는 인형'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인형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미래의 이브'라는 소설이 언급되는데, 그때 마침 나는 ALI PROJECT에 심취해 있을 때였고, 이 그룹의 (동명의) 곡 '未來のイヴ'이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을 눈치채게 되어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이브'는 프랑스의 소설가 빌리에 드 릴라당이 1886년 발표한 소설로, 한국에는 아직 번역출판되지 않은 것을 미리 밝혀둬야겠다.2 흥미롭게도 이 소설은 실존인물인 에디슨에 대해 다룬다. 에디슨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위인전에서 자주 나온 알품기라던가, 1%의 영감과 뭐시기라던가, 전구 발명이라던가, 그리고 좀 더 관심있는 사람은 GE라던가 테슬라라던가 하는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도 안다. 그러나, 한편, 에디슨은 인형사(만약 그런게 존재한다면)에도 족적을 남겼다. 축음기를 발명한 그는 이것을 '목소리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로 판매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말하는 인형이었다. 상업적 성패는 차치하더라도 이건 여러모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신시대의 꿈과 희망을 선사했으리라 생각한다.3 '미래의 이브'는 그 한 가닥으로, 천재 발명가 에디슨이 사랑에 낙담한 청년 에왈드 경에게 이상적인 여성을 '창조'해 준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사람들이 새로운 발명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음미하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4

이야기가 좀 돌아갔는데 이런 일련의 인형 관련 서적과 각종 오타쿠 컨텐츠5를 독파한 결과, 나는 꽤 인형이라는 문화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관련된 책을 더 읽을 수는 없었는데, 아마 서점에서 책을 찾는 능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6 관련 서적이 부족한 상태, 그러니까 흥미는 있어도 자극을 받을 수는 없는 상태에서 내가 찾을 수 있던 기회가 바로 이 서울인형전시회였다. 여기에 두 번 참석하면서, 내 나름대로 내가 인형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를 발견했다.

서울인형전시회에 가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인형을 만나볼 수 있다. 인간형 인형(같은 말을 동어반복하는 것 같지만)은 물론이고, 테디베어, 아이들을 위한 안전 동물 장난감(...) 등도 다루고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부스를 차렸다. 개중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건 단연 인간형 인형이다. 소재는 구체관절(음... 점토를 구우니까... '자기'가 되나?), 클레이, 헝겊, 닥종이 등으로 다양하다. 인형의 주안점도 조금씩 다르다.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인형들(흔히 말하는 바비인형같은 것들)에서부터 인형공방에서 수제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인형들, 또 인형옷들, 인형을 포함한 디오라마, 예술적 표현을 시도한 듯한 인형들, 또 인형이 생활하는 집에 이르기까지.

용인송담대학, 언제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9년과 2010년 사이의 겨울에 그런 버라이어티를 구경하던 도중, 어떤 인형을 발견하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2009년에 동아리 후배들이 만든 어떤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와 흡사했던 것이다. 그 몬스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한 명의 천재 예술가 지망생이 빚어내고, 보는 사람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디자인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 인형을 목도한 이후, 이곳에는 컴퓨터 게임에 바로 들어가도 상관없을 정도7의 크리쳐 디자인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0년과 2011년 사이의 겨울에 와서 그 느낌은 확고해졌다. 이 사이에 나는 게임을 만들지 않게 되는 것이 거의 확정되어서 더 써먹을 곳은 없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인형에 흥미가 있지만, 그 흥미 분야가 꽤 좁다는 것이다. 실존 인물을 비슷하게 모사하고, 옷의 디테일을 얼마나 살리는가 하는 것은 분명히 인형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흥미가 별로 없다. 나는 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체에 대해 접근하고 그것을 왜곡하여 새로운 표현을 만드는지에 관심이 있다.

작가분 혹시 보시면 연락주세요 ㅠㅠ

나는 인형을 '인체에 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수식어는 오랫동안 무용이 차지해 왔지만, 아마 내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는 적다고 생각한다. 인형을 조소의 부분집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인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소와는 다르고 또 깊은 발전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이 아닌 것에서 사람을 발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형태를 지닌 것에 대한 사람의 감정 이입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인형(허수아비, 토우 등)과 관련된 풍습만 살펴봐도 관련 결과가 수두룩하다. 인체에 관한 탐구는 예술가들의 관심을 오랫동안 받아왔지만, 몇몇 전위예술가들이 내세운 신체의 훼손이라는 모티브는 인형으로 오면 더이상 (상대적으로) 금기가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예술이 인형에서는 가능하다. 물론 우리가 인형 예술이라고 보는 것들 중 많은 것은 부자연스럽거나, 기괴하거나, 섬뜩하다. 그러나 어릴 적에 레고를 가지고 놀면서 사람 몸을 이리저리 해체하거나 창조적으로 '조립'하는 것을 머리에 떠올리면, 이것이 그렇게 근본적으로 역겨운 일은 아니라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인간은 어쨌든 인형에서 인간을 발견하기 때문에 인형을 이상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인간을 이상하게 다루는 것처럼 근본적인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인형의 묘미가 놓이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구체관절인형은 '부품화된 신체'8라는 특성을 갖는데, 이것은 일종의 형식화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을 이용한 결손의 표현은 이제는 진부할 정도이다. 신체부품의 대량생산과 교체에 대한 모티브까지도 연결되는 이 특징은, 비인간적 부품과의 교체와 같은 방식을 통해 내게 새로운 감각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인형에 대해 앞으로 기대할 일이 있다면, 뭐 당연하게도 인형이 내게 계속 자극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적인 인형을 만드는 일이나 인형의 주변세계를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도 물론 인형의 발전에 중요한 일이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인형으로 더 과감한 표현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인형을 통해 인간을 관찰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9

그리고 혹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부탁이 있다면, 지금 날려쓴 글은 제가 배운 것 없이 느낀 것만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인형 관련해서 좋은 가르침을 얻을만한 서적 따위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리고 마무리로 이것. 유쾌하긴 한데...

  1. 어떠한 취미를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발화자가 당시 가지고 있는 시간적, 금전적, 정신적 여유를 복잡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취미로 시작하지 않는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하다. []
  2. 그러나 이 글을 쓰며 찾은 희소식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안에 출판될 것이라 한다!! []
  3. '살아 있는 인형'에 의하면. []
  4. 참고로 나는 번역본이 없는 이 책을 일본어판으로 읽었지만, 번역이 1977년에 되고 수정되지 않은 책이라(!!) 읽는데 살짝 고생했다. 그대로 공의 경계 일본어판보다는 나았다. []
  5. 대표적으로 꼭두각시 서커스, 로젠 메이든, 영웅전설 5 바다의 함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
  6. 인형 제작에 관한 책은 읽어봤지만. []
  7. 물론 내 커트라인이 낮은 탓도 있다 []
  8. 인간의 관절과 거의 같은 동작을 하기 위해 주요한 관절이 구체로 처리되고 가동될 수 있기 때문에 구체 관절 인형이다. 따라서 구체관절인형의 큰 부위는 - 머리, 몸통, 손, 팔다리등은 - 기본적으로 분해되는 부품이다. []
  9. 놀랍게도 이것은, 내가 게임에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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