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trivial Everyday 자명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237월/11Off

BL에 대해 생각하다

요즘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중에 TIGER & BUNNY라는 녀석이 있다. USTREAM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생방송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1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챙겨볼 수 있으면 챙겨본다. 내가 설마 본방사수에 목숨을 걸게 될 줄이야... 어쨌든,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한번 또 횡설수설해볼까 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NEXT라는 이름의 초능력자들과 평범한 인류가 공존하는 세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히어로물로, 베테랑이지만 정의감에 휩쓸려 많은 사고를 저지르는 히어로 '와일드 타이거'와, 이지적인 외모에 냉철하고 범죄자에게 부모를 잃었다는 슬픈 배경을 지닌 신참 히어로 '바나비 브룩스 주니어'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루어 여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어떻게 말하자면 히어로들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요즘 꽤나 인기가 많은데, 그 인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BL코드이다. 한때 야오이라 불렸고, 이젠 '여성이 지닌 남성과 남성 사이의 연애에 대한 판타지'라고 이해할 수 있는 BL은 일본발 서브컬쳐의 단단한 한 장르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주요 캐릭터의 남성비중이 높은 편이고 주역 또한 남성과 남성의 콤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BL 코드를 통해 해석될 여지가 높다.

애니메이션 캡쳐

주역 두 사람에 의한 소위 '공주님안기'가 자행되고 있다.

게다가 가끔 제작진들이 '노린 듯한' 연출을 사용해, 다시 말하자면 '기존에 BL 문화에서 사용되던(내지 BL적으로 여겨지는)' 연출을 차용해 BL적으로 이 작품을 즐기던 사람들은 더욱 즐겁게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 애니메이션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특히 나는 2차창작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의 2차창작 중 가볍게 볼 수 있는 만화 종류를 자주 보는 편이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다 찾아보는 건 아니고, 아티스트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Pixiv에서 검색어를 통해 조금씩 보는 편이다. 이게 꽤 재미있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중이라, 새롭게 추가된 정보에 대해 반응해 새로운 만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그 만화를 보고, 태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다.

문제는 이 만화중에 많은 수가 BL 코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냐면, BL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단 내가 남자기도 하거니와, 남성과 남성의 연애나 성행위에 대한 묘사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2 나는 BL 코드가 들어간 만화는 보지 않는다. 다행히 제목과 태그 때문에 내용을 끝까지 다 보고나서 '아... 이거 BL이었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다.

이쯤 되니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나는 BL은 즐기지 않는다. 한편, TIGER & BUNNY는 꽤나 BL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일종의 모순이 생긴 셈이다. 어디서 이 균열이 생겼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실타래는 자연스럽게 풀렸다. 일단 내가 TIGER & BUNNY에서 BL스럽다고 생각한 건, 당연히 두 주인공 '와일드 타이거'와 '바나비 브룩스 주니어'의 관계에서였고, 나머지 캐릭터들 사이에서는 딱히 그런 코드를 느끼지 못했다.

반면 (2차창작) BL의 세계에서는 이른바 '커플링'이 그 둘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작품 안의 많은 캐릭터들 사이로 퍼진다. 예를 들자면 '와일드 타이거'에게는 학창시절부터 친구였던 동료 히어로 '록 바이슨'이 있는데, 커뮤니티에서는 가끔 이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얽혀 있는 그림들이 올라온다. 내 반응은 이렇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는데?!"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부디 그러지 않아줬으면 하는 부분은, 그렇다고 내가 두 주인공의 커플링을 지지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두 주인공 캐릭터들 사이에는, 한없이 연애감정에 가깝다고 (특정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호감의 표시라고 여겨질 수 있는 묘사나, 러브코미디에 가까운 시츄에이션이 존재했다. 따라서 그 둘의 관계에 있어서는 연애감정에 관련된 아슬아슬한 묘사까지는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관계에서는, 연애감정에 대한 묘사를 못 느꼈고,3 따라서 다른 캐릭터들이 지니는 연애감정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단순히 말해 나는 (2차창작) BL에서 이야기가 '비약'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원작에서의 캐릭터들(과 이야기)과, BL에서의 캐릭터들(과 이야기) 사이에 비약을 느낀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BL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공 캐릭터 상징 글자)(수 캐릭터 상징 글자)라는 두 글자만 주어지면, 그 비약을 메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BL이라는 단어는, (또 어떤) BL이라는 단어와는 가리키는 것이 달랐던 것이다.

물론,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비약'은 BL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내가 BL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오리지널 설정을 무리하게 갖다붙여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BL이 아닌) 만화를 봤을 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한 것 같다. 단순히 말하자면 나는 BL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것 이전에, 내게는 BL이 재미가 없는 것이다. 나라는 개인과, 광범위한 BL 팬층과, (그보다 더 많은) BL을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 어느쪽이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건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 애초에 그리 말할 생각도 없었지만.

웬만한 상업 애니메이션, 혹은 서브컬쳐 작품에 인간관계를 그리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과, 그 주인공과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캐릭터가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소년과 히로인 소녀를 다루는 이야기로는, 라이트 노블이란 장르가 하나의 극한을 달리고 있지 않나 싶다.

TIGER & BUNNY의 경우에는 이 두 캐릭터가 모두 남성이었을 뿐인 거다. 이 작품이 둘의 관계를 다루면 다룰수록,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폭은 제약되면서도 또한 넓어지기도 한다. 내가 이 작품에서 느끼는 재미란 BL과는 상관없이 이런 부분에 있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그렇다면, BL이 재미없는 사람으로서는 '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BL을 즐길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그럴듯한 분석을 해 놓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의 접근을 하자면,

......뭔가 여성이 청소년기에 얻게 되는, 남성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민감한 인간관계 파악 능력에 대해 썰을 풀어놓을려고 하다 보니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쓰지 않기로 한다.

따라서 여기까지 와서 결론이 빈궁한데, 대충 마무리하자면 서브컬쳐 향유 커뮤니티에서 주된 소비자는 아동이나 아동하고 별 차이 없는(-_-) 남성들이었는데, 그런 작품들이라고 해도 캐릭터나 스토리는 어떤 여성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애나 성에 관한 묘사에 있어서는 철저히 남성중심의 마초이즘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서브컬쳐 판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발견된) BL, 그 이전의 야오이는 여성의 연애에 관한 인식에 부합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BL은 서브컬쳐에 있어서의 여성의 욕구와 갈망을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서브컬쳐에 있어서의 페미니즘 선언인 것이다!

하하 개판이네

글이 이렇게 개판이 될줄은 몰랐다

  1. 원래는 수신지역 제한을 하는지 한국 컴퓨터로는 볼 수 없다. 아이폰으로 한동안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음성이 완전히 막혔다. orz []
  2. 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3. BL을 벗어나서 보자면, 작품 내에 러브코미디는 존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