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trivial Everyday 자명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219월/14Off

평가옥 삼성점의 평양냉면

그는 냉면을 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은 일요일이고 우리가 만난 장소는 선릉역이다. 다시 말해 비즈니스 지역의 식당가인 이곳에는 연 가게가 얼마 없다는 뜻이다.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을 냉면가게, 그것도 평양냉면가게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다소 배려가 모자란 모습이지만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이 가게는 냉면 외에도 온반과 만두국을 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점을 확인한 후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4인용 입식 식탁과 좌식 식탁이 반반씩 놓인 전형적인 평양냉면집의 홀이었다.

나는 평양냉면을 시키고 그는 닭고기가 들어간 만두국을 주문했다. 냉면은 식사로서는 부족할 지 모르지만 평양냉면을 애호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곳의 맛을 알아둬야 나중에 또 올지 오지 않을지를 정할 수 있으니까. 그와 나는 막역한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먹는 것에 눈치를 보는 사이도 아니다. (애초에 그런 사이는 이성을 처음 만나는 자리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내 것은 맑은 국물에 면 덩어리가 담겨있는 넓은 그릇, 그의 것은 붉은 국물에 닭고기 덩어리가 보이는 뚝배기다. 기대한 모습과 다른 만두국의 색에 그는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한두 입 먹어보더니 별 상관없다는 기색이다.

나는 매번 하던 동작대로 자연스레 그릇을 입에 가져다 댄다. 국물을 먼저 맛보는 것이 내 평양냉면 즐기기의 첫 수순이다. 조금 진하다. 그릇을 보니 고추를 잘라넣은 것이 채썬 파와 함께 국물에 올라가 있다. 이것 때문인가? 알싸하게 매운 맛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평양냉면으로는 이례적이다.

그 다음으로는 면을 국물에 잘 풀어헤친 후 젓가락으로 건져올려 입에 넣는다. 음. 꽤 괜찮다. 씹는 맛도 있으면서 가볍게 잘 끊어지는 메밀 면. 이 맛이 있기에 평양냉면을 먹는 걸 그만둘 수 없다. 정신없이 먹다보니 어느새 면이 별로 없다.

국물로 배를 다시 한 번 채우고 그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화제를 바꿔 근황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와 나는 동갑이면서 서로를 깍듯이 존재하고, 서로의 이름에 '선생님'을 붙여 호칭하는 조금 이상한 관계다. 알고 지낸 지는 칠 년이 넘지만 친구라기엔 서로를 모르고, 모르는 사이라기에는 서로의 소식을 너무 자주 듣는 그런 애매한 관계.

내가 시간을 무용하게 날려버리고 있는 이야기와 그가 어떻게 앞으로 행동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한다. 둘의 공통 지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교환한다. 뭐 그런 이야기들. 냉면의 고명은 수육처럼 얇게 썬 돼지고기였다. 계란 반 쪽과 야채를 먹고 나니 그릇이 깔끔하게 빈다. 그의 그릇도 비었다.

이 집의 온반과 만두국은 소고기를 넣고 끓일지 닭고기를 넣고 끓일지를 정할 수 있는 모양이다. 소고기가 닭고기보다 귀하다는 통념에 반하게 닭고기가 천원씩 비싸다. 뭐 소고기덮밥보다 돈까스덮밥이 더 비싼 걸 봐도 소고기가 항상 더 비싸야 할 이유는 없지만 이 집은 닭 육수에 자신이 있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집 냉면도 닭 국물이려나. 애석히도 나는 국물 육수가 뭔지 알 정도로 혀가 민감하지 못하다.

그와 오렌지 시럽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조금 걷다 헤어졌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처럼 편안한 만남이었다. 그와 내가 공유하는 '오타쿠 공대생'이라는 코드 때문일까. 배가 고프고 산책도 고파 이태원과 명동을 들러 청키면가의 완탕면을 먹고 비첸향의 육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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