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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월/16Off

규칙이 부정확한 사회, 불법 유도하는 국가, 암묵지의 문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비롯되며, 민주주의 국가에 산다는 것은 국민 자신이 자신을 통치한다는 구조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다수의 생명체에 의한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규칙을 만들어 그 지배에 따르도록 하고, 대신 그 규칙을 만드는 절차에 우리가 직접 의지를 투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규칙이란 법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준법의식은 우리 의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법률이 아닌 다른 권위있는 규칙들에도 우리는 법률과 비슷한 사고를 적용하곤 한다. 이 글에서 법률은 다른 권위있는 규칙들과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한 규칙들의 예시로는 소속된 집단의 내규, 각종 계약에서 '을'들이 지키도록 강제되는 조항, 혹은 판례나 행정기관의 판단들이 있다.

이 글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규칙과 규칙의 적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M대로 하겠다'라는 말이 경고 내지는 협박으로 이해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기본값은 '재량껏' 하는 것이고 규칙은 일종의 징벌로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규칙은 현실과 분리되며, 규칙이 형해화된다는 말을 쓰고는 한다.

이것의 첫 번째 문제로, 규칙을 적용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규칙을 적용하는 역할을 규칙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휘두를 수 있는 무기처럼 사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취업하는 사람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퇴직 후 일정기간동안 동종업계에 이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는 하는데, 자신의 전문성때문에 동종업계가 아니면 취업에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함에도 서약서의 작성을 강요받고는 한다. 이것 자체는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가 그것을 대부분의 경우 그 서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서약서를 받는다는 것은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이다.1 단순히 회사가 이 취업자와 다툴 경우를 위해 무기를 마련해놓기 위해, 실제로 행사할 일이 거의 없고 불공정하며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큰 규칙을 세워두는 것이다. 그리고 취업자가 회사에 이것을 질의하면,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나가는 사람에 대한 대응책으로 세워둔 규칙이고, 선량하게 근무할 사람에게는 문제 없는 것이다' 류의 답변을 받는다. 취업자의 입장에서 이것을 대응할 방법은 별로 없고, 자신의 인식을 거기에 맞추는 것 이외에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규칙이 현실과 차이가 나고 그저 '써져 있는 말'에 불과하게 되면,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지키는 것이 부조리할 정도의 규칙이 하나둘씩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한 규칙들이 실제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규칙을 문제삼으려 드는 태도를 사람들이 잊어버리게 된다. 단적으로 포르노 문제가 그렇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포르노가 음란물로 규정되고, 그런 포르노의 유통은 당연히 불법이다. 공권력은 이 모든 '범죄'를 당연히 다룰 수 없고,2 선택적으로 이 범죄를 다루고 있다. 모두가 불법을 저지르게 해 놓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그 권한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힘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 범죄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린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공권력이 '선택적'으로 자신의 적의 범죄를 다루게 할 수단으로 민원과 신고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지키는 것이 부조리한 규칙들이 만연해지면 지켜야 하는 규칙들조차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때문에 지키는 것이 부조리하게 보이게 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들이 단기적 이익 앞에 어겨지며, 그 제일 희생양은 안전이다. 아파트의 불법 개조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해도, 대부분의 주변 입주자들이 그런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우둔해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판단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규칙은 선택적으로 수행되고, 당연히 어떤 규칙이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규칙은 명문화되지 않고, 암묵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규칙은,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에 대한 크나큰 위협이다.

이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런 암묵적인 '어떤 규칙은 딱히 지키지 않아도 된다'와 같은 규칙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암묵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모든 규칙을 지키게 만들면 된다: 모든 규칙을 제대로 집행하면 된다. 모든 규칙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 규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합당해야 한다. 즉 제대로 된 규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의 위에 썼듯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대로 된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원론적으로 시민 자신이다.

우리는 바라지 않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하지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규칙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하며, 예외가 필요하다면 그 역시 규칙으로 정해 두어야 한다.

  1. 대부분의 경우, 서약서가 협박하는 대로 동종업계로 이직을 했을 경우 모두 소송을 건다면 그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도 그것을 피할 것이다. []
  2. 다른 글에서 다루었지만 범죄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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