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trivial Everyday 자명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2310월/16Off

규칙이 부정확한 사회, 불법 유도하는 국가, 암묵지의 문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비롯되며, 민주주의 국가에 산다는 것은 국민 자신이 자신을 통치한다는 구조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다수의 생명체에 의한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규칙을 만들어 그 지배에 따르도록 하고, 대신 그 규칙을 만드는 절차에 우리가 직접 의지를 투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규칙이란 법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준법의식은 우리 의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법률이 아닌 다른 권위있는 규칙들에도 우리는 법률과 비슷한 사고를 적용하곤 한다. 이 글에서 법률은 다른 권위있는 규칙들과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한 규칙들의 예시로는 소속된 집단의 내규, 각종 계약에서 '을'들이 지키도록 강제되는 조항, 혹은 판례나 행정기관의 판단들이 있다.

이 글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규칙과 규칙의 적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FM대로 하겠다'라는 말이 경고 내지는 협박으로 이해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기본값은 '재량껏' 하는 것이고 규칙은 일종의 징벌로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규칙은 현실과 분리되며, 규칙이 형해화된다는 말을 쓰고는 한다.

이것의 첫 번째 문제로, 규칙을 적용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규칙을 적용하는 역할을 규칙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휘두를 수 있는 무기처럼 사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취업하는 사람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퇴직 후 일정기간동안 동종업계에 이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는 하는데, 자신의 전문성때문에 동종업계가 아니면 취업에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함에도 서약서의 작성을 강요받고는 한다. 이것 자체는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가 그것을 대부분의 경우 그 서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서약서를 받는다는 것은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이다.1 단순히 회사가 이 취업자와 다툴 경우를 위해 무기를 마련해놓기 위해, 실제로 행사할 일이 거의 없고 불공정하며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큰 규칙을 세워두는 것이다. 그리고 취업자가 회사에 이것을 질의하면,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나가는 사람에 대한 대응책으로 세워둔 규칙이고, 선량하게 근무할 사람에게는 문제 없는 것이다' 류의 답변을 받는다. 취업자의 입장에서 이것을 대응할 방법은 별로 없고, 자신의 인식을 거기에 맞추는 것 이외에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규칙이 현실과 차이가 나고 그저 '써져 있는 말'에 불과하게 되면,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지키는 것이 부조리할 정도의 규칙이 하나둘씩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한 규칙들이 실제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규칙을 문제삼으려 드는 태도를 사람들이 잊어버리게 된다. 단적으로 포르노 문제가 그렇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포르노가 음란물로 규정되고, 그런 포르노의 유통은 당연히 불법이다. 공권력은 이 모든 '범죄'를 당연히 다룰 수 없고,2 선택적으로 이 범죄를 다루고 있다. 모두가 불법을 저지르게 해 놓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그 권한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힘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 범죄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린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공권력이 '선택적'으로 자신의 적의 범죄를 다루게 할 수단으로 민원과 신고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지키는 것이 부조리한 규칙들이 만연해지면 지켜야 하는 규칙들조차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때문에 지키는 것이 부조리하게 보이게 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들이 단기적 이익 앞에 어겨지며, 그 제일 희생양은 안전이다. 아파트의 불법 개조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해도, 대부분의 주변 입주자들이 그런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우둔해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판단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규칙은 선택적으로 수행되고, 당연히 어떤 규칙이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규칙은 명문화되지 않고, 암묵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규칙은,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에 대한 크나큰 위협이다.

이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런 암묵적인 '어떤 규칙은 딱히 지키지 않아도 된다'와 같은 규칙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암묵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모든 규칙을 지키게 만들면 된다: 모든 규칙을 제대로 집행하면 된다. 모든 규칙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 규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 규칙을 지키는 것이 합당해야 한다. 즉 제대로 된 규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의 위에 썼듯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대로 된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원론적으로 시민 자신이다.

우리는 바라지 않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하지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규칙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하며, 예외가 필요하다면 그 역시 규칙으로 정해 두어야 한다.

  1. 대부분의 경우, 서약서가 협박하는 대로 동종업계로 이직을 했을 경우 모두 소송을 건다면 그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도 그것을 피할 것이다. []
  2. 다른 글에서 다루었지만 범죄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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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월/13Off

음란물 규제 현실화! 메인스트림 포르노 합법화!

0.

안녕하세요. 허구헌날 "음란물 규제 현실화! 메인스트림 포르노 합법화!"를 외치고 다니는 정진명입니다. 18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여러분들의 삶은 어떠십니까? 제가 글을 재미없고 안 읽히게 쓰이는 걸 알기 때문에 일단 유머로 글을 시작해 봤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딱 이 정도로 필사적입니다.

오늘 제가 문면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왜 '음란물 규제 현실화! 메인스트림 포르노 합법화!'를 외치고 다니냐 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께 설명을 드리고, 주제넘게도 설득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설득이라기보다도 그저 여러분께서 한번 제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주신다면 만족스럽겠습니다.

"당신이 방금 전 보신 그 포르노가,
인간의 존엄성을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건전한 성도덕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십니까?"

1.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포르노를 보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고, 포르노에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좀 과도하게 일반화를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구호로 만드는 과정에서 약간 무리를 했다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신이 방금 전 보신 그 포르노"라는 구절을 통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르노를 전혀 보지 않은 20대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비교연구가 불가능해 연구를 포기했다는 일화를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특히 그 중에서도 남성 분들은 대부분 포르노를 보셨으리라 예상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인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지만 아무런 추가 정보 없이 단지 여러분의 특정한 주변 사람이 '대한민국(사실 이것도 그다지 필요 없는데) 남성'이라는 정보만 준다면, 저는 그 사람이 포르노를 본다고 예상할 것입니다. 어쨌든 이 나라에는 수많은 일본산, 미국산 포르노를 많건 적건 영화 보듯 일상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정~말 보수적으로 잡아도 백만명 단위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명을 잡아도 문제될 건 없으리라 봅니다.1 이 글에서는 천만명이라고 쓰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말하고 있는 포르노들은 대한민국에서 불법입니다.

2.

대한민국 형법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 중
제243조(음화반포등)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문개정 1995.12.29]
제244조(음화제조등) 제243조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대한민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1)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1.9.15>
1.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

위 형법 조항은 포르노 비디오, DVD등의 국내 제조와 유통을 막는 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아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목도하게 되는 warning.or.kr의 법적 근거입니다. 이들 법에서 지칭하고 있는 '음란'이란, 헌법재판소의 형법 해석에 따르면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 법에서의 '음란'함의 해석도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2

뭐 포르노가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적 표현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은 안 하고요. 그러면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포르노가 불법일까요?

아시다시피, 내지는 아실랑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도 합법적인 포르노는 존재합니다. 성인영화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죠. 저도 어릴 때는 성인영화관을 자주 봤던 것 같습니다만 요즘은 어디 있는지 뭐 검색해도 잘 안 나오고... 모텔 러브호텔 뭐 이런 데 가면 볼 수 있다는데 가본 적이 있어야 알지... 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 '합법 포르노'를 찾아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에도 '적나라한 성적 표현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임에도 합법인 성인물은 존재합니다.3

존재는 합니다.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찾아 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3.

왜 어떤 포르노는 불법이고 어떤 포르노는 합법일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속함'과 '음란함'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음란함'은 불법이고 '저속함'은 합법입니다. 딱 잘라서 저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쳐도, 적어도 한때는 음란함은 헌법으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적이 있었습니다.4거꾸로 말하자면 저속한 표현에 대해서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계속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속한 표현'과 '음란한 표현'의 차이는 뭘까요? 근본적으로는 정도의 차이이고 실제 판단은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인 판단기준으로는 단순히 '성인영화'와 '포르노'의 차이를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차이는 우리가 '감상할 때' 느끼는 확연한 차이일 수도 있지만, 생산 과정에서 지키는 것이 명백한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니까요.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건 안 되어 있건 성기가 노출되는가, 성행위의 장면이 직접적으로 (카메라 앵글의 조정이나 오브젝트로 가리는 것 없이) 노출되는가. 대충 이 정도 차이 아니겠습니까?

직접적인 성기와 성행위의 노출은 인간 존엄과 인간성을 왜곡한다고 우리 법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4.

음란물 규제는 필요합니다. 적어도 인간 존엄과 인간성을 왜곡하고 건전한 성 관념을 해하며 생산 과정에서 개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음란물은 존재합니다. 아니 이론적인 이야기를 때려치더라도, 아동포르노와 수간물의 제조와 유포를 형법으로 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극소수일 겁니다.

음란함과 저속함에 대한 판단 기준은 날이 감에 따라 바뀌어 갑니다. 이제는 우습지도 않은 『즐거운 사라』는 1992년 음란물이었습니다. 저는 2003년에 마침 15세 근처였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성적 망상을 즐겼습니다. 이 책은 청소년에게도 판매된 걸 보아 저속하지조차 않았군요. 2013년 현재 유두의 노출까지는 저속한 표현이고, 미성년자 아이돌에게 섹시 컨셉의 의상을 입히고 저녁 시간 음악방송에서 엉덩이를 흔들게 하는 것은 15세 관람가입니다. 신문기사의 성인광고들은 전연령 관람가죠.

하지만 오늘날의 음란물 규제는 도무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구의 '상당수'가 보는 것이 과연 건전한 성관념을 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 이 일본산과 미국산 '한국의 메인스트림 포르노'는 (규범적인 차원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의 성관념의 일부가 아닐까요? 그것이 '상당수'가 아니고 '대다수'라면 어떻습니까?

현재 천만명이 보는 포르노는 불법입니다. 그것은 이런 포르노들이 음란하기 때문이며, 풀어서 말해 '인간 존엄과 인간성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입장에서든) 큰 문제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인간의 존엄성을 희희낙락 파괴하고 있거나, 아니면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행동 양식과 인간으로서의 존재 방식의 일부분을 법이 심각하게 침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둘 중 어느 입장에 서 있는지는 문맥에서 파악이 가능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음란물 규제 현실화와, 메인스트림 포르노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5.

대한민국 수립 이래 수많은 음란물 관련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사라』도 있었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박경신 교수님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5. 이들 사건의 주안점은 간단히 말해 "예술이냐 외설이냐"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정말 오로지 성적 흥미만을 추구하고, 다른 가치는 없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두고 이견을 다투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렇습니다. "오로지 성적 흥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사회가 이것을 법으로 막아야 하는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본능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만약 그 본능을 추구하는 과정과 결과물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개인의 행동을 제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성과 관련된 본능이란 부분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함이 맞습니다. 사회적 해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충분히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숙한 성인이 자기 혼자서 성적 욕망을 해결하려는 행위, 그러니까 자위행위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실은 시청각 교보재는 수영복 수준으로 제약이 걸려 있고, 물리적인 도구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불법이거니와...

포르노를 보는 것에도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포르노 산업, 고상하게 말해 '성 이미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러나 현 상태로는 그런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아쉽지만 성 노동에 관한 논의는 이 글에서는 할애하겠습니다. 저보다 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더 적합한 분이 있으시겠지요.

6.

2000년대 중후반에 포르노를 보신 분들이라면 각종 공유망에 '배우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촬영된 성인용 비디오'와 '아동의 발달에 지대한 해악을 끼쳤음이 분명할 아동 포르노'가 구분되지 않고 검색어 하나 차이로 들어차 있던 광경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일본의 창작 그림 커뮤니티로, 수많은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일본에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pixiv에 수많은 성 묘사가 올라온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차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원하던 것들을 합법의 영역으로 끌고오지 못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온 것에 대한 결과들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눈치도 없고, 사회에 뿌려진 수많은 암묵지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이해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지워졌으면 하는 암묵지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네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불법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사실 남들도 '다 알아서 잘' 하고 있는 거다. 혹시 네가 운이 나빠서 걸려도, 네 잘못이지 사회를 탓하면 안 된다."

저는 제가 하고 남들도 하고 싶어하는 행위를, 가능하다면 사회적인 해악을 없애는 방향으로, 합법화하고 싶습니다.

7.

저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음란물 규제를 현실화하고 메인스트림 포르노를 합법화하는데 동의하시는지 모릅니다.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만 흘끗흘끗 볼 뿐, 이게 우리 사회의 논쟁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만약 여러분들께서 제 생각에 동의하신다면, 생각 날 때마다 외쳐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음란물 규제 현실화! 메인스트림 포르노 합법화!"

박근혜 정권 5년간의 '제' 국정과제는, 이 토픽에 대해 사회적인 토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결론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바라는 게 많으면 안 좋겠죠.

우리들 대부분이 보는 외산 포르노가 합법인가 아닌가는, 국회의원이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법관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뭐... 기술적으로는 그렇겠지만요.)

바로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바뀌는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8.

"음란물 규제 현실화! 메인스트림 포르노 합법화!"

99.

읽기 어려운 글을 많은 분들께서 읽어 주셨습니다.

그 중 장승욱님6께서 글이 잘 읽히도록 수정하자는 의견과 함께 도움되는 조언을 듬뿍 주셔서, 글의 짜임새를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여전히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사실 연구를 인용하고 싶었는데 제 검색실력이 미천하여... 보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 95헌가16, 관련 위키백과 문헌 []
  3. ... 쉽게 말해, 우리가 비디오가게에 가서 성인비디오 테이프를 보는 수준의 영화는 합법이고,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보는 야동은 불법인 겁니다. ... []
  4. 95헌가16: 위 항목 참고 []
  5. 음란물 파문 박경신 "법적 음란기준 토론 위한 것" []
  6. 910217J@지메일닷컴. 크롤링을 방해하기 위해 전각 문자를 사용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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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월/12Off

새로운 환경과 유머의 오독 문제

Case 1.

甲은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창작한 유머를 선보였고, 호평을 받았다. 이 자리에 있던 乙은 그 유머를 기억해 뒀다가 다른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 그 유머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 집단은 甲과 乙의 친구들과는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유머는 실패해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乙은 그 집단에서의 평판이 안 좋아졌다.

Case 2.

甲은 트위터에서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자신이 창작한 유머를 선보였고, 호평을 받았다. 甲을 팔로하던 乙은 그 유머를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리트윗했다. 乙의 팔로어들은 甲의 팔로어들과는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乙의 팔로어들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몇몇은 기분이 상했다. 甲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들의 오해와, 심지어는 항의도 받았다.1

트위터에서는 수많은 유머가 유통된다. 의도적, 지속적으로 유머를 창작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진심으로 말한 것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안타까운 경우다) 특이한 점으로는 리트윗 시스템 때문에 어느 정도 유머의 Authority가 보장되는 채로 전파된다는 것인데 이 시스템 덕에 사람들이 더 의욕적으로 유머를 만들게 된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 또한 있다.

옛부터 유머를 선보였는데 유머가 실패하면 보통 개선의 여지(내지 책임)는 유머를 꺼낸 사람에게 있다. 청중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유머를 선보이는 사람에게는 그저 '그 유머가 자신에게 재미있었기 때문에 유머를 던진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 유머를 듣고 즐거워할지를 청중과 맥락을 판단해 유머를 선보일 책무가 있다. 위 Case 모두에서 甲은 (결과적으로) 그리 하였고, 乙은 그리 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乙의 실패에 대한 비용은 Case 1에서는 乙이 지불한 반면, Case 2에서는 대부분의 비용을 甲이 지불하고 있다. 이게 트위터상에서 보존되는 유머(일반화시켜서 발언)의 Authority의 역기능이다. 실제 트윗을 통한 발화에는 여러 맥락이 있는데, 리트윗은 그런 맥락을 무시한 채 트윗을 전파하는 경향이 있다.2 오독의 가능성은 너무나도 높다. 그리고 유머와 같은 '정확도'가 중요하지 않은 소식의 경우 그 유명한 '자정작용'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Case 2와 같은 경우에도 乙이 책임을 지는 체계로 사회의 합의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트위터라는 환경 자체가 정보의 전파성을 중시함에 따라 정보 수신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타임라인의 특성상 리트윗의 판단은 매우 빨리 이루어진다. 그러면 트위터라는 시스템의 오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다. 甲은 여전히 잘못한 것이 없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다들 조심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甲은 자신의 유머가 '재미에 따라'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乙 또한 (진부한 조언이지만) 자신의 팔로어들이 듣고 재미있어할 유머인지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난데없이 맥락 바깥에서 등장한 이해 못할 발언을 보더라도 원래 말한 사람이 어떤 의도였는지 파악하고 그 다음에 판단하려는 태도가 (Case 2의 乙의 팔로어 같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해진다.

조금씩만 노력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 가끔 그 노력과 개선의 비가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1. 예시로 닉쿤 음주운전 사건에 대한 팬덤의 반응을 희화화한 유머와 거기에 대한 오해에 대한 불만을 볼 수 있다. []
  2. ex: 이 트윗과 바로 그 다음 트윗의 리트윗 수 차이를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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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월/12Off

내가 논술을 출제한다면: 현대사회의 각종 문제에 따른 비용청구

제시된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여라.

[배경]

대학생인 A와 인근 주민인 B는 A가 재학중인 대학 내에 위치한 식당 '오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소'는 많은 푸드코트가 그러하듯, 카운터에서 자기가 먹을 메뉴를 주문하면 대금을 지불하고 주문번호가 새겨진 전표를 받는다. 주문은 대금 결제와 동시에 주방으로 전달되어 주문받은 메뉴가 조리되고, 조리가 완료되면 요리사가 요리를 (주방과 홀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의) 배식대로 가져가고 동시에 해당하는 메뉴의 주문번호를 전광판에 표시한다. 그러면 전표를 지닌 사람이 배식대에서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와 자기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시스템이다. 전광판에 표시된 주문번호는 식판을 받아간다고 해서 지워지지는 않고, 오직 전광판이 꽉 차 있을때만 순서대로 지워진다.

'오소'에 처음으로 방문해 메뉴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들인 B와 달리, 재학생인 A는 자신이 평소 즐기던 'XO 게살 볶음밥(5500원)'을 주문하고 주문번호 107번이 새겨진 전표를 받았다. 조금 뒤 B도 카운터로 와서 무난해 보이는 '밀라노풍 도리아(4500원)'를 주문하고 주문번호 108번을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자리에 가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상황에서 A와 B는 서로가 무엇을 주문했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식당은 한적해 이 두 사람 이외에 들어온 주문도, 또 이 두 사람이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다른 추가 주문도 없었다.

이윽고 배식대의 전광판에 108번이 뜨고, 곧이어 107번이 떴다. B와 A가 차례로 배식대에 도착했는데 정작 배식대에 음식은 하나밖에 올려져 있지 않았다. 주방을 담당하던 요리사 순우경씨는 다른 요리를 하기 위해 배식대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버튼을 잘못 눌렀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두 사람에게 했다. 108번이 전광판에 먼저 떠서 B가 식판에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B가 식판을 챙겨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A는 빈손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전광판에 있는 108번과 107번은 딱히 지워지지 않았다.

[일어난 일]

그러나 실제로 나온 요리는 A가 주문한 'XO 게살 볶음밥'이었다. B는 이 식당이 처음이었고 도리아 자체도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음식을 잘못 받아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아무 의심 없이 'XO 게살 볶음밥'을 먹었다. 한편 식당 직원은 홀을 돌아다니던 중 A가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고, 조리 예정 시간은 지났는데 식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고 판단해 A에게 요리가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고, A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직원은 A에게 '바로 요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고 전했다. 식당 직원은 얼마 가지 않아 A에게 가야 할 요리가 B에게 갔고 B에게 가야 할 요리는 배식대에 놓여 있는 것을 파악했다. 얼마 안가 A는 결국 식당측이 새로 요리한 'XO 게살 볶음밥'을 먹었다.

[A의 입장]

A는 일단 자신보다 늦게 주문한 B의 번호가 자신보다 먼저 호출되었다는 것에는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조리 시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아 자리로 돌아오면서 한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그것은 B가 가져간 식판에 있는 음식은 자신이 몇번이나 먹어서 잘 알고 있는 'XO 게살 볶음밥'이었던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는 나와 108번 손님이 모두 'XO 게살 볶음밥'을 주문했다는 가능성이다. 이 경우에는 자신과 같은 음식을 자신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의 주문이 자신의 것보다 먼저 처리된 것이기 때문에 불쾌한 일일 것이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108번 손님이 다른 요리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A는 요리사가 자신을 보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A와 B 중 누구에게 말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애초에 요리사는 배식대에서 멀리 있어서 A와 B가 지닌 전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누가 'XO 게살 볶음밥'을 주문했고 누가 '밀라노풍 도리아'를 주문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A는 B가 식당 앞에서 메뉴를 고르던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B가 자기가 가져간 음식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 경우에도 어쨌든 자기가 먹어야 할 식사를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불쾌한 일이었다.

A는 식당이 정상적이라면 전자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추측은 후자로 기울었다. 실제로 A는 B가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B에게 가서 양해를 구하고 B의 주문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지만, A 자신의 대인관계 컴플렉스와 '전자'였을 경우의 뻘쭘함(후자였으면 잘못 가져간 음식을 정정하는거니 문제가 없지만, 내가 먼저 주문했으니 내가 먼저 먹어야 한다는 의도로 다른 사람이 가져간 식판을 빼앗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A는 생각했다)과 귀찮음, 결정적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는 하겠지만 거기에 자신의 책임은 없다는 생각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물음 1. 이 이야기에서 발생한 주요한 불편 내지 비용이 무엇인지 서술하라. (200자)

물음 2. 위 물음에서 발생한 불편이나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취할 수 있을지 제시하고, 그러한 방법에 요구되는 비용의 분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논하라. (900자)

물음 3. 이 이야기와 위 물음에 대한 답이 현실 사회의 '비용의 배분' 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쓰라.(4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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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겪은 실화를 기반으로 함. 이런 형식이 된 것은 내가 논술에 자주 있는 찬/반 구도나, 누군가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태도 등을 싫어하기 때문임.

이 글을 쓰면서 면접시험같은데서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 부담 갖지 말고 솔직하게 답하세요'는 '솔직하게 답하면 합격됩니다'는 말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런 질문들은 보통 지원자가 기업이나 면접관-_-이 지향하는 가치나 문제를 보는 시점 등과 얼마나 맞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듬.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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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월/12Off

비밀번호 문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건 적건 이런저런 계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역으로 인터넷의 각종 서비스에서 현실의 개인은 계정, 특히 아이디를 통해 다른 사람과 구분된다. 어떤 사람이 어떤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개, 그리고 거의, 비밀번호를 사용한다. 사람이 현실에서 '본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신체적 특징 등의 정보와 신분증과 같은 체계를 이용하듯이, 사람이 인터넷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며 '본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조합, 나아가 각종 보안 도구들을 이용한다.

비밀번호라는 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비밀번호는 올바른 권한을 가진 사람만이 알고 있으며 권한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몰라야 하는 사람은) 비밀번호를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권한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각종 방법을 통해 비밀번호를 알아내거나 계정에 접근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전제조건을 깔고, 사람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어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해 보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안전한 비밀번호를 만드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글과 그에 이어진 타래에 많이 정리되어 있다.

이 타래에서 많이 건드리지 않는 주제는 또 하나의 문제인 '비밀번호 중복사용'인데, 간단히 말해 여러 사이트에 같거나, 주인이 동등함을 추측할 수 있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계정이 있고, 그 계정들이 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한다면, 그 중 단 한 사이트만 공격당해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나머지 모든 사이트도 뚫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즉 비밀번호는 사이트마다 다른 것이 좋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물 위로 드러난다. 인터넷에는 너무 많은 사이트와 서비스가 있다. 너무 많은 아이덴티티와,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비밀번호를 중복해서 사용할수록 전체 아이덴티티 셋이 위험하고, 비밀번호를 다르게 사용할 수록 사람의 기억력이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초에 보안이 그렇지만 완벽은 없고, 더 많은 보안은 더 많은 비용(includes 귀찮음)이 필요하다. 이 수많은 벤처들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와 소셜 네트워크와 뭐시기뭐시기 하는 각종 사이트들이 모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하나씩 요구할수록, 사회가 겪는 전체 보안 비용은 증가한다.

하나의 계정으로 여러 사이트를 접근할 수 있게 만들면 조금 나아질까?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서비스들도 존재해왔다. (상업적 성공은 별개) 그러나 당연히 그 계정이 뚫리면 여러 아이덴티티가 모두 함께 망한다는 점에서 완벽하지는 않다. 이메일 주소 인증으로 비밀번호를 override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잘 모르겠다. 사실 이게 진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머리가 안 좋아져서 아이디/비밀번호 기억하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트집을 잡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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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월/11Off

반값등록금을 생각한다

요즘 반값등록금이 뜨겁다. 내 생각은 이렇다. 반값등록금은 구호이고, 결코 반값등록금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등록금이 반액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반액등록금이라는 결과 자체가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 원리에 의해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면, 그것은 교육의 종합적 질이 (이론적으로) 절반이 된다는 의미이고, 증세를 통해 이뤄진 반값 등록금은 그냥 돈 나가는 구멍이 조금 달라지는 것 뿐이다. 난데없이 뿅 하고 등록금이 절반이 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반값등록금 소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그것은 아니다. 반값등록금은, 결국 지금 젊은 세대가 받고 있는 각종 불합리할 정도의 착취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어떠한 사회적 요구에 의해 대학에 진학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데, 그 대학들은 요즘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기숙사비 등)를 통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자력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결국 부모의 손을 빌리거나 직접 노동을 하게 된다.

부모의 지원으로 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일단 미뤄두고, 직접 노동을 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여기에도 사회문제가 있다. 바로 노동 착취 문제이다. 딱히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젊은 층이 겪기 쉬운 문제다. 약 30만명이 임금체불 문제를 겪고 있고, 그 액수는 대략 1조 3천억원이다. 악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임금체불 문제 말고도1 별 악의없이 뽑는 '무급인턴' 제도도 있다. 말 그대로 '너는 이 일을 통해서 경험을 얻으니 좋지 않냐. 그러니까 차익(노동으로 발생한 가치)은 우리가 전부다 가져가겠다. 그래도 너한테 남는 장사다.'라고 말하는 제도다.2

다시 말해 (고등학교)-대학교-취직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젊은 세대의 생활반경 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돈을 벌어야 할 필요를 어쨌든 앞당겨 만들고, 돈을 벌려면 늙은이3들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또 돈을 쓰고 몸을 바쳐야 한다. 취직을 하기 위한 각종 스펙에는 한번 시험을 치는데 수십만원이 드는 영어 점수가 포함되고, 경험 내지 이력서 내의 한 줄을 위해 노동을 무상 내지 헐값으로 제공한다.

애초에 인턴이라는 제도가 강제도 아니니만큼, 이런 비판에 대해 기업의 옹호자들은 '싫으면 하지마' 식의 지극히 계약자유원칙 수준에서의 반론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면 고용 사회에 끼워줄 수 없다고 협박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인턴제도에 실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인턴으로 일하는 기회는 (고용측이 아예 작정하지 않는 한) 좋은 기회이며, 젊은이들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할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실제로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이런 시스템들은 정말 교묘하고 복잡하게 설계되어있다. 시장의 강자가 (부당할 정도로) 많은 이익을 보는 구조면서도, 그 구조는 일견 정당한 것처럼 보여, 이런 시스템을 공격하기는 힘들다. 학자금대출도 마찬가지고, 이공계장학금4도 그런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 아래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는, 그런 점에서 돌파구가 된다. 일단 많은 대학생들이 금전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또 대학 등록금이 '대학생 평균이 무리없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보다 큰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받고 있고, 그 원인은 이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나설 명분이 된다.5 정치적인 구호가 되어 사람을 모이게 할 수 있다. 그 정도의 힘은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대학 등록금이 절반이 되는 것, 그 자체가 잘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통해 이 사회의 좀 더 뿌리깊은 문제에 접근할 수가 있다. 일단 적립금을 쌓아놓고 등록금을 무섭게 올리는, 이제와서는 기업과 별 차이를 못 느끼겠는 사학들을 수술할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국립대 법인화 문제에서도, 대학의 영리 추구 기업화를 견제할 수 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다. 위에 쓴 것처럼, 젊은 층의 착취 문제로도 연결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면,6 일반적인 경제적 착취 문제로도 연결되는 도화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중점을 둔다면 좀 더 의미있고 사회를 좀 더 (두루뭉술하게) 좋은 곳으로 만들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한대련은 반값등록금의 구호주한미군 철수를 슬쩍 얹었다. 에라이.

  1. 뭐 악의적이 아닌 임금체불도 있겠지만... 그냥 '이런 악의적인 노동 착취 이외에도'라고 쓰고 싶은데 왜 그러질 못할까. []
  2. 아마도 '고등학교때 봉사활동 하던 감각으로 일좀 해봐라' 같기도 한데... []
  3. 노인이나, 어르신이 아니고, 늙은이다. 이 글에서의 늙은이는 먼저 태어나서 젊은이들보다 일할 시간이 몇십년은 더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 부와 권력을 쌓고, 젊은이들이 이것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
  4. 이공계장학금은, 약간 주제와 빗나가지만, 수혜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시스템이다. '비이공계 진출시 이공계장학금 환수'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
  5. 물론 경찰한테는 그런 것 없다. 아마 이들의 머리 속에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없는데, 법이 그걸 인정하니까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별 꼼수를 다 쓰는 것 같다. []
  6. 사실 위에 쓴 '젊은 층 착취'는 사실 연령과 세대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한다. 기득권과 기득권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넣어도 딱 맞고, 오히려 그게 더 적합하다 볼 수도 있다. 따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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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월/11Off

셧다운제는 아이들을 확실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게임, 어쩌다 이지경까지…라는 기사의 서두에 "셧다운제는 아이들을 죽음에서 구하자는 얘기다."라는 김민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의 발언이 소개되어 있어 긴 침묵(사실 끄적대던 글이 있기는 한데 아직 다 쓰지 못함)을 깨고 포스팅을 올린다.

게임 셧다운제야말로 아이들을 확실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아이들정도는 죽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는 이미 많이들 죽어 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대가 거듭될수록, 이 정책으로 인해 죽어가는 우리의 아이들은 늘어갈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게임 셧다운제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1. 게임 셧다운제가 아이들을 죽이는 확실한 방법은, 바로 학부모 스스로가 자기 아이의 목을 죄게 만드는 것이다. 애초에 아이들이 왜 게임에, 그리고 인터넷에 중독이 되는가를 이해하고는 있는가?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가? 애초에 자기 아이들이 뭘 하고 놀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진정한 문제는 바로 게임이 아니라 바로 가정에 있다. 그것도 '몇몇' 가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1 수많은 가정에서 학부모들은 게임에 대해 무지하다. 중학생인 아들이 하는 게임이, 사실은 18세 미만 이용불가 게임이며, 그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어머니가 얼마나 될까?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정에서의 관심과 보살핌, 특히 부모의 훈육이 필요하다. TV를 볼 때나 책을 볼 때 당연히 그러듯이, 아이들이 플레이할 게임도 당연히 부모들이 한 번 필터링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과정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부모님 세대는 게임을 모르고 자랐고, 아이들이 엄청난 속도로 게임을 이해하는 것에 비해 부모 세대가 게임에 대해서 잘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격차는, 게임과 함께 성장한 게이머 세대들이 부모가 되어가면서 좁아질 것이고, 어떻게 보자면 '일시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셧다운제와 같은 제도는 이러한 부모의 게임에 대한 무지를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유해 요소는 정부에서 알아서 차단해 주니까, 부모님 여러분께서는 아이들을 학원 버스에 무사히 태우는 것만 신경써 주세요."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어떻게 보자면 각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교육을 정부에서 가져간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인 무언가(어떤 소설이 있었던 것 같은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가정이 맡아야 할 부분을 제거함으로서 가정을, 부모를 더욱 '멍청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물론 많은 사람들(학부모들)이 셧다운제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자기 아이들이 새벽에 게임하는거 제대로 막지도 못 하고 있는 와중에 법으로 막아주겠다니 당연히 찬성할 만 하다. 그러나 당장 얻을 지지와, 향후의 파급 효과를 생각해보면, 이것만한 포퓰리즘이 어디 있는가?

셧다운제는 이런 식으로 진정한 문제에 대한 접근을 막고, 단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덮는다는 점에서,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접근 방식이다. 암 환자에게 진통제만 투여하는 꼴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기사에서

“요즘 고등학생들이 부모 말을 듣나요? 밤 12시 이후에 게임하는 고등학생 자녀들을 부모가 통제할 수 없어요. 그러니 19세 미만으로 해야 합니다.”

와 같은 발언이 나오는데, 조금만 고민해보면 "요즘 고등학생들이 부모 말을 듣나요?" 가 진정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말이 맞다고 하면, 이미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미성년자이고, 아직 부모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고 여겨지는 고등학생들이 부모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이게 게임의 문제인가? 여기에 대고 게임을 막는다는 것이, 그저 조금 부모를 안심시키는 것 이외의 무엇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인가?

차라리 학부모 단체에서 이러한 제도를 요구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다. 설령 그 방향이 옳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모들이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거짓이겠는가. 그러나 행정 단체에서 이러한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자식 사랑에 자식을 망칠 수 있는 분들이 바로 부모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부모들의 이런 행동을 욕할 수야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행정 단체가 이 수준까지 내려와서 뭘 하겠다는 건가? 인기에만 영합하는 정책일 뿐이다. 정부가 가족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부모가 아무 제약 없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부모를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 흔히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부모는 몰라서는 안 된다. 그게 개인의 문제라면 또 모를까. 국가적으로 부모의 무지를 조장하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목 조르게 만드는 일이다.

2. 게임 셧다운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청소년의 지위가 어떤지를 암시한다. 물론 게임 셧다운제는 (MBC의 게임 폭력성 실험 등과 같이) 대한민국에서의 게임, 게임 산업, 게이머, 게임 산업 종사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일단 미뤄두자.

애초에 청소년들이 왜 자정 넘어서까지 게임을 하는가? 수면 장애가 있는거라도 아니면, 청소년들도 밤에는 잠이 오고, 자고 싶을 것이다. 왜 자정 넘어서까지 게임을 할까? 정말로 슬픈 것은, 우리가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낮에는 학원 가니까. 학원을 안 가더라도, 어쨌든 학생은 공부해야 하니까.

이게 정말 빌어먹을 일이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얼마나 닭장같은 상황에서 자라는지는 다들 알고 있는데, 다들 거기에 대해서 함구한다. 문제인 걸 알아도 뭐 어쩔 수 있냐는 거다. 위에 언급한 기사에 보면

김 국장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수면시간이 짧은데, 그 이유는 과도한 학습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밤새우며 게임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관련 분석 보기)

이 게임 셧다운제가 시행되어 이루어질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이 나라에서 청소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거의 대놓고" 알 수 있다. (수면 시간을) 넉넉잡아서 7시에 일어나고, 8시부터 자습, 9시부터 수업을 들어서 3시에 수업 끝나면 학원, 학원에서 10시까지(넉넉하게 잡은거다! 내 경우에는 새벽 1시까지 공부했다) 공부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11시. 일어나서 먹는거 이동하는거 빼고는 공부밖에 안 했는데, 남는 시간이 8시간밖에 없다. 수면시간 8시간이면 너무 많이 잡은건가?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적당히 빈틈 봐서 학생들 놀건 다 챙겨서 논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노는 걸로 인정할거면 학원 선생들이 학생들 도망쳤다고 패지는 말아야지. 피시방 갔다고 쪼지는 말아야지. 이 사회에 너무나 많은 것이 비행이다. 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르는 사회 구조는 청소년이 해야 할 행동이 화이트 리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리스트에 적힌 거 빼고는 다 비행.

잡기 쉬운 두더지부터 잡는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 두더쥐를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3. 게임 셧다운제는 우리 아이들의 놀 문화를 파괴한다. 물론 지금 게임이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놀이 문화인가를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는 다르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불신과 저주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 지위를 확립한 시, 소설은 역사에서 확연히 홀대받았던 기간을 확인할 수 있고, 영화는 차라리 빠르게 자리를 잡고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 다를 것이 있겠는가? 게임은 직접적 상호작용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지니는 예술의 분야이다. 딱히 이렇게까지 치켜세우지 않아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을 포함해 게임에 옹호적인 세대가 이 사회의 가장 늙은 사람이 되어 있을 쯤에는, 게임은 그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게임 셧다운제가 대한민국의 게임 '산업'에 악영향을 주리라는 것은, 이 글의 어떤 예측보다도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게임 산업이 없다면, 한국을 표현할 만한 예술로서의 게임도 세계적으로 그 자리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딱히 한국이 세계에서 게임으로 1등을 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 문제는, 결국 한국 사람들도 게임을 하게 될텐데, 그 때 우리가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외국산 게임일 것이다.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고, 한국이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게임 같은 것은 없거나, 모두 고사 직전이 될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이 만화에 끼친 영향만 봐도 자명한 일이다.

사실 이러한 문화적 종속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뽀로로를 졸업한 아이들이 다음으로 보게 되는 TV 애니메이션의 얼마나 많은 수가 일본산인가. 일본인의 정서를 담은 작품을 본 아이들이,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일본인에 가깝게 자라게 된다고 하면 그것을 지켜볼 일인가? (물론 학교-학원-잠과 같은 반복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유년기를 살지 않는 이상, 한국인과 정서를 소통할 기회는 많을 것이고, 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체 왜 한국에서 문화를 지우려고 하는가? 혹시 한국적인 것과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헷갈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사실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처럼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 혹은 한국적인 작품을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 영화는 다행히 어느정도 되고 있는 것 같다. 만화도 고꾸라지다가 웹툰이라는 활로를 찾고 나아가고 있다. 이제 게임에 시련이 닥칠 차례가 온 것 같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이 치맛바람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게임은 국가 단위로 망할 것이고,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향유할 문화는 또 하나 줄어들게 될 것이다. 국가 단위의 자폐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마 게임 다음의 새로운 매체와 놀이도 비슷한 시련을 겪지 않을까 한다.3

아, 혹시 아이들은 놀지 말고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그 사람의 아이들에게 자폐증이 생기지 않도록 인도적 차원에서 기도해 주는 것 정도?

맺으며
셧다운제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 반대하는 사람들은 게임 산업의 논리를 들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논리를 든다. 내가 보기엔 이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사실, 우리가 어찌 팔불출 부모의 자식사랑을 뭐라고 할 수 있겠나. 단지 정부가 그 수준에 영합해 진정 가족에게 필요한게 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는것을 지적하고 싶다.

게임 셧다운제도가 정말 청소년을 구원할 것인가? 나는 일단 이걸 먼저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다시 말해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
  2. 그런 작품이 나오고, 외국산 작품에 비해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생각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겠다. []
  3. 뭐 그때는 우리 세대가 그 매체와 놀이를 탄압하려 들지도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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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월/11Off

나와 인형: 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기대

COEX에서 열리는 2010 서울인형전시회에 갔다왔다. 작년 행사와 마찬가지로 동아리 후배 한명과 동행했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인형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되었고.

내가 처음 인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중학교때 이후로는 속해있는 문화권 덕분에 각종 인형(특히 '구관'이라 불리는 것들 - 구체 관절 인형)을 다루는 문화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인형을 다룰 만한 위인은 못 되었다. 지배적인 이유는 귀찮아서1일 것이다. 그러다 서점을 뒤지는 도중 이제이북스의 '살아 있는 인형'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인형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미래의 이브'라는 소설이 언급되는데, 그때 마침 나는 ALI PROJECT에 심취해 있을 때였고, 이 그룹의 (동명의) 곡 '未來のイヴ'이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을 눈치채게 되어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이브'는 프랑스의 소설가 빌리에 드 릴라당이 1886년 발표한 소설로, 한국에는 아직 번역출판되지 않은 것을 미리 밝혀둬야겠다.2 흥미롭게도 이 소설은 실존인물인 에디슨에 대해 다룬다. 에디슨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위인전에서 자주 나온 알품기라던가, 1%의 영감과 뭐시기라던가, 전구 발명이라던가, 그리고 좀 더 관심있는 사람은 GE라던가 테슬라라던가 하는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도 안다. 그러나, 한편, 에디슨은 인형사(만약 그런게 존재한다면)에도 족적을 남겼다. 축음기를 발명한 그는 이것을 '목소리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로 판매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말하는 인형이었다. 상업적 성패는 차치하더라도 이건 여러모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신시대의 꿈과 희망을 선사했으리라 생각한다.3 '미래의 이브'는 그 한 가닥으로, 천재 발명가 에디슨이 사랑에 낙담한 청년 에왈드 경에게 이상적인 여성을 '창조'해 준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사람들이 새로운 발명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음미하며 읽어보기를 추천한다.4

이야기가 좀 돌아갔는데 이런 일련의 인형 관련 서적과 각종 오타쿠 컨텐츠5를 독파한 결과, 나는 꽤 인형이라는 문화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관련된 책을 더 읽을 수는 없었는데, 아마 서점에서 책을 찾는 능력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6 관련 서적이 부족한 상태, 그러니까 흥미는 있어도 자극을 받을 수는 없는 상태에서 내가 찾을 수 있던 기회가 바로 이 서울인형전시회였다. 여기에 두 번 참석하면서, 내 나름대로 내가 인형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를 발견했다.

서울인형전시회에 가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인형을 만나볼 수 있다. 인간형 인형(같은 말을 동어반복하는 것 같지만)은 물론이고, 테디베어, 아이들을 위한 안전 동물 장난감(...) 등도 다루고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부스를 차렸다. 개중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건 단연 인간형 인형이다. 소재는 구체관절(음... 점토를 구우니까... '자기'가 되나?), 클레이, 헝겊, 닥종이 등으로 다양하다. 인형의 주안점도 조금씩 다르다.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인형들(흔히 말하는 바비인형같은 것들)에서부터 인형공방에서 수제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인형들, 또 인형옷들, 인형을 포함한 디오라마, 예술적 표현을 시도한 듯한 인형들, 또 인형이 생활하는 집에 이르기까지.

용인송담대학, 언제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9년과 2010년 사이의 겨울에 그런 버라이어티를 구경하던 도중, 어떤 인형을 발견하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2009년에 동아리 후배들이 만든 어떤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와 흡사했던 것이다. 그 몬스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한 명의 천재 예술가 지망생이 빚어내고, 보는 사람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디자인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 인형을 목도한 이후, 이곳에는 컴퓨터 게임에 바로 들어가도 상관없을 정도7의 크리쳐 디자인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0년과 2011년 사이의 겨울에 와서 그 느낌은 확고해졌다. 이 사이에 나는 게임을 만들지 않게 되는 것이 거의 확정되어서 더 써먹을 곳은 없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인형에 흥미가 있지만, 그 흥미 분야가 꽤 좁다는 것이다. 실존 인물을 비슷하게 모사하고, 옷의 디테일을 얼마나 살리는가 하는 것은 분명히 인형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흥미가 별로 없다. 나는 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체에 대해 접근하고 그것을 왜곡하여 새로운 표현을 만드는지에 관심이 있다.

작가분 혹시 보시면 연락주세요 ㅠㅠ

나는 인형을 '인체에 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수식어는 오랫동안 무용이 차지해 왔지만, 아마 내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는 적다고 생각한다. 인형을 조소의 부분집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인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소와는 다르고 또 깊은 발전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이 아닌 것에서 사람을 발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형태를 지닌 것에 대한 사람의 감정 이입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인형(허수아비, 토우 등)과 관련된 풍습만 살펴봐도 관련 결과가 수두룩하다. 인체에 관한 탐구는 예술가들의 관심을 오랫동안 받아왔지만, 몇몇 전위예술가들이 내세운 신체의 훼손이라는 모티브는 인형으로 오면 더이상 (상대적으로) 금기가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예술이 인형에서는 가능하다. 물론 우리가 인형 예술이라고 보는 것들 중 많은 것은 부자연스럽거나, 기괴하거나, 섬뜩하다. 그러나 어릴 적에 레고를 가지고 놀면서 사람 몸을 이리저리 해체하거나 창조적으로 '조립'하는 것을 머리에 떠올리면, 이것이 그렇게 근본적으로 역겨운 일은 아니라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인간은 어쨌든 인형에서 인간을 발견하기 때문에 인형을 이상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인간을 이상하게 다루는 것처럼 근본적인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인형의 묘미가 놓이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구체관절인형은 '부품화된 신체'8라는 특성을 갖는데, 이것은 일종의 형식화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을 이용한 결손의 표현은 이제는 진부할 정도이다. 신체부품의 대량생산과 교체에 대한 모티브까지도 연결되는 이 특징은, 비인간적 부품과의 교체와 같은 방식을 통해 내게 새로운 감각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인형에 대해 앞으로 기대할 일이 있다면, 뭐 당연하게도 인형이 내게 계속 자극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적인 인형을 만드는 일이나 인형의 주변세계를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도 물론 인형의 발전에 중요한 일이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인형으로 더 과감한 표현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인형을 통해 인간을 관찰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9

그리고 혹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부탁이 있다면, 지금 날려쓴 글은 제가 배운 것 없이 느낀 것만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인형 관련해서 좋은 가르침을 얻을만한 서적 따위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리고 마무리로 이것. 유쾌하긴 한데...

  1. 어떠한 취미를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발화자가 당시 가지고 있는 시간적, 금전적, 정신적 여유를 복잡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취미로 시작하지 않는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하다. []
  2. 그러나 이 글을 쓰며 찾은 희소식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안에 출판될 것이라 한다!! []
  3. '살아 있는 인형'에 의하면. []
  4. 참고로 나는 번역본이 없는 이 책을 일본어판으로 읽었지만, 번역이 1977년에 되고 수정되지 않은 책이라(!!) 읽는데 살짝 고생했다. 그대로 공의 경계 일본어판보다는 나았다. []
  5. 대표적으로 꼭두각시 서커스, 로젠 메이든, 영웅전설 5 바다의 함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
  6. 인형 제작에 관한 책은 읽어봤지만. []
  7. 물론 내 커트라인이 낮은 탓도 있다 []
  8. 인간의 관절과 거의 같은 동작을 하기 위해 주요한 관절이 구체로 처리되고 가동될 수 있기 때문에 구체 관절 인형이다. 따라서 구체관절인형의 큰 부위는 - 머리, 몸통, 손, 팔다리등은 - 기본적으로 분해되는 부품이다. []
  9. 놀랍게도 이것은, 내가 게임에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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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월/10Off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만약 대학에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이 간다면

대학에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이 간다면, 회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채용해야 할 것이고, 대졸 임금보다 적은 부담이 될 것이고, 청년노동착취 문제가 어느정도 고쳐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윗 문단은 별 생각 없고 고려 없는 일직선 자유연상법에 의한 사고이기는 하지만, 대학진학률이 높은게 마냥 자랑은 아니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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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월/10Off

먹고 살기는 누구나 힘들다

트위터 타임라인이 살짝 시끄러워서 보니 타블로에 관련된 TV프로가 나오고 있나 보다.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타블로 온라인'이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그 중 하나다. 왜냐 하면 타블로를 믿지 않을 사람들은 지금부터도 계속 타블로를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 나는 감정이 이성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내가 제일 크게 느낀 감정은 타블로 개인에 대한 연민이 제일 컸다고 할 수 있다.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 사람이 이렇게 공격받아야 하는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물론 타블로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도 타블로가 공격받아야 하는 이유는 있다.(없으면 왜 하겠는가) 내 생각에도 이유는 있다. 그런데 이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지적하고 있지는 않은 이유 같다. 그로 인하여, 동시에, 문제이기도 하다. 타블로가 공격받는 제일 큰 이유는 그가 '공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2

아, 물론 타블로는 공인이므로 그의 행동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미 있다. 타당성도 있다고 생각한다.3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것이 아니다. 만약 타블로가 TV에 나오지 않은,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나 옆집 형이었어도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까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사람들이 타블로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이게 뭔 문제냐고 말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걸 문제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무언가 다른게 보이기 시작한다.

타블로가 이렇게 세간의 이목을 모으게 된 건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연예인이 되지 않고 일반인으로 산다는 선택지는 없었을까? 이것은 무의미한 질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으로 연예인을 선택했고, 설령 그가 연예계에 진입하지 않았더라고 해도 그와 비슷한 사람에게서 비슷한 일은 벌어졌을 것이다. 타블로의 건은 단순히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은, 노출되지 않는 삶을 선택한 사람에 비해,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파괴될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생활을 유지한다. 뭐 필요 없는 사람도 있어보이지만, 넘어가고. 우리는 특성과 필요에 따라 노동을 분류할 수 있다. 특성에 따른 분류로는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는 어느정도 괜찮은 '이분(二分)' 분류이고, 이 이분법적 분류에 '정도'를 포함하면, 대개의 노동은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의 수직선 위에 사영(Projection)할 수 있다. 필요에 따른 분류로는 요즘 성 노동과 감정 노동이라는 단어가 꽤나 의미있게 울린다. 필요에 따른 분류는 노동의 분류에 있어서 수직선보다는 집합적으로 나타날 것 같다. 이런 분류를 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는, 이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노동자는 각종 성병이나 정신적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정신 노동자에게도 심각한 정신 질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다수 대중에 의해 사회인으로서의 삶이 파괴될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노동은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나는 일단 '명예 노동'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4 명예 노동을 하는 명예 노동자들은 대중에게 인지되는 것이 생활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을 위해 (연예계 등의) 불합리한 관행(만약 있다면)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되며, 그러한 명예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들, 예를 들자면 PD나 소속사 사장 같은 사람 앞에 약해진다. 반면 한번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나면, (KBS 블랙리스트같은 매우 이례적인 사태만 아니면) 그런 사람들 앞에서 강해질 수 있지만(Bargain Power를 가질 수 있지만), 이때부터는 위에 적었듯, 대중에 의해 자신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을 지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에 적은 명예 노동의 속성이, 타블로가 연예인을 선택한 것이 그에게 '이런 공격을 당해 마땅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헷갈리기 쉽지만, 육체 노동자가 골절당해 마땅하거나 뇌진탕을 당해 마땅하지 않은 것과 같다. 감정 노동자라는 개념이 나온것이 '아~ 이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학대되어도 괜찮구나'를 납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듯이. 육체 노동자는 육체를 (최소한)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쓰고, 노동현장에는 각종 안전장비를 설치해 놓는다. 그런것이 미비하다면 문제가 되고, 육체노동에 대해서는 이런 보호장치가 사회적으로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성 노동자는 (이유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성병 따위에 대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만약 이런 사례를 놓고 본다면, 감정 노동자의 감정도 보호해야 하고, 명예 노동자의 명예 또한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5

우리 대부분은 노동을 한다. 이것들은 직업이라는 상태와 연결되어 사람을 규정짓는데 일조한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은 존재한다. 이걸 노동으로 바꾸어도, 거의 isomorphic하게 적용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노동에 귀천은 없는 걸까? 난 언제부터인가, 성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명예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유지되었는데, 사실 개그맨들이 (특히 '몸으로' 웃기는 계열) 처참하게 무너져가며 '우위에 의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걸 보고, 저게 과연 몸을 파는 것(혹시 이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죄송)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나는 개그맨을 직업삼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난 각종 가학적인 대접을 받는 일이 인간적으로 모욕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성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고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하고는 했다.6

성 노동을 명예 노동과 '양지의 노동'으로 끌어올린다는 생각은, 동시에 명예 노동의 어떠한 부분은 성 노동에서 일어나는 '음지의 노동'에 가까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뗄 수 없는 관계(Dual)이다. 어떻게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인간적인 존엄성이라는 측도에서 보자면 명예 노동자들이나 성 노동자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둘 다 꽤 침해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 노동자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남성성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꽤나 명백하게 정의되었으며, 따라서 비판하는것도 어렵지 않다.7 반면 명예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대중이다. 불특정 다수와 군중심리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게 개인의 삶을 파멸로 이끌 수 있으며, 대중에 대해서는 비판조차 쉬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또, 연예인만이 명예 노동자는 아니다. 스스로의 (일반적으로 언론을 타지 않는) 일을 하면서 대중에게 노출된 사람은 다 명예 노동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유명 작가와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리고, 강준만 교수가 정말 열심히 분석한 TV 대중문화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개인적으로 이 교수의 책을 사서 읽어봤는데 실망한 적이 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기대했던 '대중 문화'는 인터넷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기서는 TV와 같은 기존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책이 나온 시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인터넷 시대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그것은 이전보다 개인이 더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앤디 워홀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간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다'고 했다. 앤디 워홀이 어떠한 매체를 상상하고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갈수록 그 미래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같다. 물론 이 외에도 비슷한 예는 많지만, 방송 그 자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기존 TV 문화와 제일 비슷하게 스타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례를 든다. 이곳의 BJ(방송 진행자)는 소규모의 명예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미모와 애교를 동원해 수입을 얻는 여성들도 존재한다. 이 점을 비판하며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이들을 부르며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8 이런 BJ와 같은 사람들 또한 연예인을 철저하게 객체로 취급하고 비판하는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공격은 사실, '노동이냐 아니냐'와 관련이 없이도 벌어진다. 그저 블로그에 쓴 포스팅이 비웃음을 살 만 하거나((나는 이 포스팅에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아니 사실 문제가 있어도 다수의 공격은 받고 싶지 않다)) 하여도 이런 인터넷 대중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단지 나보다 더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 동안만 안전한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들에게 생기는 문제는 명예 노동자의 문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볼 수 있다.((개인에게 있어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명예 노동자는 이러한 공격으로 인해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노출되거나, 직업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대충 시작했더니 끝내기가 쉽지 않다.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먹고 살기는 누구나 힘들다"9. 노동은 자신이 가진 어떤 능력, 시간 따위를 다른 이에게 제공하여 그를 통해 생활을 영위하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강조한 노동의 중요한 속성은, 어쨌든 살아가는데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동은 어느정도 의무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에 개인은 종사하는 노동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체크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는 누구나 힘들다"라는 말은 공허하다. 공인, 내가 다시 정의한 바에 따르면 '명예 노동자'는 명예와 존엄의 손상을 생명줄에 걸고 돈을 벌어 생활을 영위한다. 왠지 모르지만, 이 점을 확실히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볼 일

* 연예계의 이슈를 통해 덮어지는 정치적, 행정적인 이슈

* 아동들이 TV에 출연하는 것

* 화성인 바이러스와 같은 프로그램10

*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하는 점(내 생각엔 검색어 '타블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글 읽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점

  1. 그리고 자극이 없다면 그걸 서서히 잊어버리다가, 거의 다 잊어버린 상태에서 다시 자극이 들어오면 '그 시점에서 다시' 타블로를 믿을까 믿지 않을까를 결정할 것이다. 개중 뻔뻔한 사람들은 잊어버리기도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설 것이다. []
  2. 잠깐 공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원래 공인의 뜻은 공직에 있는, 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여기서 공인은 공공, 즉 다수 대중에게 행동이나 발언등이 공개 및 노출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정치인, 공무원은 물론이고 TV에 자주 출연하는 사람은 다 공인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한국의 대중 문화를 말하는데 있어 TV를 뒤쳐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트위터 유명인이 공인이라고 하긴 좀 애매하니까. []
  3. 안타까운 것은 이 논리가 소위 만만해 보이는 '딴따라'한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권력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검증받아야 된다고 하지만,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에 이명박에게 BBK의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
  4. 사실 좋은 이름을 모르겠다. 명예는 일단 법적 용어로 사용되는 것 같기도 해서 썼지만, 더 좋은 이름이 없나 생각한다. []
  5. 이쯤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은 타블로에 관한 글이 아니다. []
  6. 물론 현실이 많이 다름을 요즘은 알고 있다. []
  7. 그것의 실행이 쉬운가는 또 다른 문제. []
  8. 나는 이들도 일종의 성 노동자라고 본다. 나는 성 노동이라는 개념이 지금보다 더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좋은가는 다른 문제지만 []
  9. 나는 한때 이것을 세글자로 줄여서 부르짖고 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발음이 '여고생'이라서 묻혔다. []
  10. 나는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소수자에 대한 혐오 유발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머머 왜 저런대'를 유도하는 프로그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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