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trivial Everyday 자명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1412월/11Off

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힘든 점

내가 대학생이 된 것은 2007년이다. KAIST는 무학과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1학년에는 기초과목을 들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수학 과목들을 듣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였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수학과 전공 72학점, 대충 말해서 약 스무 과목 정도를 들어왔고 이번 학기에 졸업하게 되었다. 내년부터는 별 일 없는 한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리라.

어쨌든 이 긴지 짧은지 영 종잡을 수 없는 기간 동안 나는 수학을 공부했다. 지금 돌아와서 보니, 참 힘든 기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힘들었던 이유 중 몇 가지는 아마도 내가 공부할 방법을 잡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1 그래서 여기에 새로 대학에서 수학 공부를 시작할 사람들을 위해 내가 고생했던 점들을 적어두려 한다.

이 포스팅이 '학부에서' 힘든 점을 다루고 있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 bound가 있다. 우선 대학원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힘든 점을 내가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_-; 그래서 이 부분이 상계(upper bound)다. 반면 고등학생때까지 나는 평범한 자연계 일반고생이었고 수학의 '어려운' 부분에 딱히 접하거나 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수학에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부분은 거의 대학교에 들어와서부터였고, 여기에 내가 서술할 내용의 하계(lower bound)가 놓인다. 또 내 성장배경과 비슷한(평범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와서 '수학'을 공부/전공하게 된) 사람 이외에는 딱히 조언이 될 만한 내용인지 모르겠다.

어떤 학문을 공부하는게 힘들다면 그 이유는 그 학문이 지니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그 학문이 목적으로 하는 대상을 알기 위해서, 더욱 잘 알기 위해서, 학문은 배우는 사람에게 어떤 특정한 자세를 지닐 것을 요구한다. 태권도를 배울 때 서 있는 자세 하나도 새로 배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하는 사고 방식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경제학을 배울 때는 '합리적'으로 사고하기를 요구받고, 법(중에서 민법)을 공부할 때는 '계약'이라는 개념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느낀 바에 의하면 수학의 그러한 특징은, '당연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것은 인간적 사고이다. 수학의 맨 위, 그러니까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탁월한 결과에 가까워질수록 그런 당연함은 용납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용납해야 하는 당연함이 있다면 그것은 제일 기초에 있는 정의 밑바닥의 무정의 용어2 수준에서 존재한다. 공리라는 단어를 이용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수학에서 '당연함'을 이용해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철저하게 수학의 규칙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점, 여기에 수학의 어려움이 놓인다고 생각한다. 한편 논리 구축 과정에서 자명한 것도 있다. 이 경우 우리는 그것을 또 다른 정의로 쓰거나(...) 한다.3

나는 수학을 처음 배울 당시, 그리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 당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철저한 수학적 사고는(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내게는 머나먼 일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겨우겨우 예제 등을 통해 정의된 것들을 이해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이것도 엄밀하게 어떤 현상인지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에 예제를 몇 개 들자.

행렬이 나오기 전에는 곱셈에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sinc), (유리수 특성함수) 등을 처음 만날때마다 ‘헐… 이런 것도 있어?’라고 생각한다.
확률변수 \{X_n\}이 있으면 왠지 모두 i.i.d일 것 같다.(?)
실수상에서 정의된 함수를 하나 생각해보라고 하면 거의 예외없이 해석적이며 무한번 미분 가능한 함수를 고른다!

수학에서 정의를 따라서 ‘순진하게’(수학적으로)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많은 경우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평범한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수준이 되는 게 있다.4 수학을 배우는 입장인, 그러니까 아직 평범한 사람 수준으로 사고하는 사람의 머리속에는 그 정의의 매우 특수하고, 사실은 매우 좋은(Nice한) 경우만 사고한다.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정의에 적용되는 증명 같은 걸 배워도, 그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해보게 되고, ‘당연한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시험을 망치게 된다.

이걸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많은 예제를 습득하는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미적분학을 갓 배우며 미분가능하고 연속한 함수를 배우는 친구들에게 \mathbb{R}에서 \mathbb{R}로 가는 함수인데, 무리수일때 0을 돌려주고 유리수일때는 identity인 함수5를 알려주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이 친구들이 아는 함수라고는 다항/지수/로그/삼각함수밖에는 없으니까... 사놓고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Counterexamples in Analysis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까지는 대충 작년 10월에 써놓은 내용이고, 이 글을 쓰는 시점인 2011년 12월 14일에는 조금 생각이 더 추가되었다. 많은 예제를 아는 것은 일단 언제나 중요하다. 수학과를 학부까지만 하고 다른 일을 할 거라면, 충분히 많은 예제를 습득하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럽게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만약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혹은 그럴 생각이 있다면 예제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저런 수많은 예제와 수많은 지름길을 돌파할 수 있는- 어찌 말하자면 '저런 예제를 Generate할 수 있는'- 일종의 재능이 필요하다. 재능이라고 해도 선천적이라기 보다는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훈련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일반적 교육과정을 거치며 수능을 위해 수학을 공부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막연히 그 훈련 과정의 일부가 소위 올림피아드 공부로 불리는 부분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고 나는 저 재능을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다. 내가 올림피아드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올림피아드를 안 하고 온 사람은 수학에서 정말 도태될 거라고 생각하는건가? 그건 아니다. 지금 나는 내 사정때문에 하지는 못하지만, 해결책은 있다고 생각한다. 올림피아드 공부 하면 된다... -_-; 늦더라도 상관 없으니. 만약 학부생이라면 대학생 수학 경시대회를 준비해볼 만 하다. 내가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학과 차원의 문제풀이 경진도 더 많이 참여했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경시출신이 아닌 사람은 경시출신에 대해 불리하다고 생각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출발선을 긋고 자기가 모자란 부분을 받아들여 채우기 위해 달려나가는게 최선의 해법 아닐까.

...넋두리가 되어버렸다.

  1. 지난 포스팅에서 여기까지 쓰고 글이 크게 탈선했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다시 쓴다. []
  2. 원소라던가, 초등 기하학에서 점-선-면 같은 것들... []
  3. 다른 학문도 결국 비슷하지 않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적당히 긍정할 수밖에 없다. 난 다른 학문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학문에 따라서 '철저히 학문의 규칙에 따라 사고하는 것'의 어려움의 양상이나 세기가 다를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
  4.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12차원에 대한 이해에 대한 유머가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 []
  5. 잘 알다시피 이 함수는 0에서만 연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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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월/10Off

내가 왜 수학과 대학원에 가게 되었는가

내가 대학생이 된 것은 2007년이다. KAIST는 무학과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1학년에는 기초과목을 들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수학 과목들을 듣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였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수학과 전공 72학점, 대충 말해서 약 스무 과목 정도를 들어왔고 이번 학기에 졸업하게 되었다. 내년부터는 별 일 없는 한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리라.1

어쨌든 이 긴지 짧은지 영 종잡을 수 없는 기간 동안 나는 수학을 공부했다. 지금 돌아와서 보니, 참 힘든 기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힘들었던 이유 중 몇 가지는 아마도 내가 공부할 방법을 잡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그냥 눈앞에 떨어지는 퀴즈를 위해 공부를 하고,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고, 학점을 위해 공부했다. 지도교수님께는 단 한 학기 수업을 들었고, 학사에 관련한 몇몇 자잘한 사인을 받는 걸 제외하면 그다지 찾아뵙지도 못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내가 수학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KAIST의 많은 수는 과학고 출신이고, 이들은 대개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수학이나 과학의 한 분야에 특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경시대회를 대비해 공부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우리 수학과의 많은 수는 이러한 '수학경시 출신'이 차지한다.2 반면 나는, 2학년 1학기 수강과목을 선택하기 직전까지 내가 수학을 공부해도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컴퓨터쪽에서 재능을 발휘했었고(과연 이게 재능인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의심스럽지만), 경시 대비를 하지 못한 것과 모 부장교사의 나를 대하는 태도에 질린 것 때문에 나는 다행히도(아마도) '정보 영재'로는 도태되었고, 수학과 과학에 그렇게 특출나지는 못했던 나는 과학고 입시에서 떨어졌다. 일반계 인문계고에 진학해서는 문과를 선택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이과에 가서 물리쪽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는 정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입학당시 생각했던 건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였지만, 내 생각이 현실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포기했고, 물리학과에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반물리학실험II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아마 난 과학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 2학년이 눈앞이었다.

내 결정은 이론의 한쪽 끝과, 사회의 한쪽 끝을 동시에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었고 KAIST에서 제공하는 전공 중 가장 추상적인 걸 공부하는 수리과학과와, 가장 인문/사회적인 능력을 요하는 경영과학과(당시 BEP:Business Economics Project)를 복수전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결정에 이 생각만 투영된 건 아니었다. 수학과 금융을 접합시켜서 어떻게 살아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과학은 내게 안 맞는 것 같아서 경영학을 공부해서 그쪽으로 나가야겠는데, 경영학만 전공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제일 요구학점과 이수요건이 만만했던 수리과학과를 선택하게 되었기도 하다. 지금 와서 보자면, 내 재능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테스트해 보기 위한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실험의 답이 나왔다. 두 전공 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40학점이다. 졸업학기인 나는 경영과학과 학점을 40학점 딱 맞췄고, 그에 비해 수리과학과 전공은 72학점을 들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어쨌든 나는 사회적인 능력이 부족했다. 몇몇 경제학에 관한 과목과 일부 법과 제도에 관한 과목에는 흥미가 갔지만, 어쨌든 경영에 필요한 의사결정, 논의의 과정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반면 수학은 내게 좌절과 도전을 선사해 주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힘들었지만 어떠한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 지금은 꽤나 즐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수학을 더 배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내가 수학을 재미있다고 느끼게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겨우 올해 들어서, 그러니까 학부 4년차가 되어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는 수학의 절차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빨리 이 고된 과정을 거쳐서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었던 생각 뿐이었다. 금융수학에 관한 과목을 모조리 섭렵했다. 그러나 르벡 적분을 듣게 되며, 위상수학을 이해하게 되며, SDE를 알게 되며 내 생각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지금의 내가 말하는 건,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 수학을 공부해 오신 분들께 실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에 대한 내 생각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마 다음 포스팅에서 '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힘든 점'에 대해 다룰 것 같다.((사실 이 글을 그 글로 쓰고 싶었는데 내가 항상 그렇듯 서문이 너무 길다)) '확증편향'과 '목적성의 결핍', 이 두 가지는 정말 내가 수학을 공부할 때 힘들었던 것이고 지금 와서도 내가 이걸 잘 극복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이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고, 내가 수학을 공부할 때 효과적인 도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차로3 나는 수학을 계속 공부하게 되었다. 이 블로그를 열며 지은 제목인 '학부생 주제에 건방지다'는, 아마 내가 대학원생이 되어서도 이어가고 싶다. 그 때의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수학을 계속 공부하게 된 이유는 학부생 때 이런 건방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니까.

이 자리를 빌어 내가 수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나중에 자세히 쓰기 위해 남겨두자.

수리과학과 07학번 이 재석.
수리과학과 최 건호 교수님.
전산학과 Otfried Cheong 교수님.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
거친 학교생활을 함께 헤쳐나간 HAJE 친구들.

  1. 어쩌다보니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게 타이밍이 기막힐지도 모른다. 나는 지난 금요일에 대학원 최종합격 공지를 확인했다. []
  2. 또 많은 수를 차지하는 학생들은 경제, 금융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이다. 나 또한 꽤 오랫동안 이 분류에 들어가 있었다. []
  3. 훈민정음 언해에서 발췌. 훈민정음 서문의 언해본은 고등학교때 배운 이래로 정말 좋아하는 글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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